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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raine

역사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 전후에 이르는 기간 중 현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는 킴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인들이, 기원후 1,000년 동안에는 고트족, 훈족, 불가리아인, 아바르, 하바르, 마자르, 페체네그 민족 등이 출현, 명멸하기를 거듭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 중세까지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인들이 거주하였으며, 현재도 크림에는 이들의 후손과 문화가 남아 있다. 카르파티아(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 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이 정착하였다.

키예프공국

8~9세기 동슬라브민족 최초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Kyiv Rus)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 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로 삼았다. 키예프는 1500년 전 건설되었으며 10~12세기경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추정된다.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 년 간 키예프 루시는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특히 볼로디미르 대공(Volodymyr the Great)치세(980~1015)에는 기독교 수용(988년) 및 비잔틴 문화 도입 등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하였다.
1132년 므스티슬라프(Mstyslav)왕 사후, 왕자들간의 후계 다툼으로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1240년 키예프가 몽고족에 의해 폐허로 변하면서 키예프 루시는 멸망하기에 이른다.
키예프공국은 당시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였으며, 후일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갈라치아, 볼하니아 공국

우크라이나 땅에는 키예프 공국의 뒤를 이어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병, 분열되다가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코자크 헤티만국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 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에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분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

제2차 세계대전-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 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1(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1945년에는 소련방내 러시아, 벨로루시와 함께 유엔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우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짜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선물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독 립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8.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선언법을 채택하여 독립을 선언하였고 1991.12.1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하였다. 1991.12.5 레오니드 크라프축(Leonid Kravchuk)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91.12.8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 3개국 정상간에 소련방 탈퇴 문서에 정식 서명하였다

독립 후

독립 후 94. 3월, 98. 3월, 2002. 3월, 2006.3월 각각 제 2, 3, 4, 5대 총선이 있었다. 1994. 5월, 제2대 대통령으로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가 당선, 1999. 10월 제3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고, 2004. 11월 제4대 대통령 선거부정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2005. 1월 빅토르 유쉔코(Viktor YUSHCHENKO) 야당후보가 제 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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