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Quick Menu

  • 정기간행물
  • 학술회의
  • 공지사항
  • 자유게시판

국가정보

Home > DB > 국가정보 > 우크라이나

ukraine

정 치

정치 개관

☞ 대통령 우위의 이원집정부 체제로 정당정치가 아직은 정착되지 못함.
- 대통령의 당적 보유금지, 백여 개에 달하는 군소 정당의 난립, 의원들의 잦은 당적 변경 등으로 안정적인 정국 운영에 다소 어려움이 있음.
- 현재 의회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단일 여당은 없으며, 10수개 군소 정당이 연합, 여당 역할을 수행
☞ 구소련 시대의 기득권층과 독립 후 등장한 신흥기업인(Oligarchy)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
- 법령 및 정책 결정과정에서 특정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음.
☞ 언론의 독립성 및 권력비판. 견제기능이 아직 확립되지 못하였으나, 2004. 12월 'Orange 혁명’이후 상당한 정도로 개선되고 있음.

정치약사

1) 독립~제3대 대선(1999. 10월)이전까지

o 91. 8. 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 “독립선언법”승인
o 91. 12.1 "독립선언법“을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90% 지지)
- 독립 첫해에 140여 개 국가로부터 국가 승인
o 91. 12 초대 대통령 선거
- 12. 5 Kravchuk 초대 대통령 선출
o 92. 4 크리미아 지역에 대해 자치공화국 지위 부여
- 분할 독립 움직임 무마
o 94. 1. 14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3국 정상간 우크라이나 핵무기 폐기 및 이에 따른 보상원칙 합의
o 94. 3 총선 실시
- 친러 좌익세력이 크게 득세(공산당, 사회주의자당, 농민당 등 좌익계 정당이 1/3정도 의석 차지)하여 실질적으로 의회 장악
o 94. 6 제2대 대통령 선거
- 1차 선거에서는 Kravchuk 전 대통령이 리드하였으나, 2차 투표에서 Kuchma의 승리로 결말
- 선거운동 과정에서 Kuchma는 러시아와의 정치, 경제 유대강화를 주장 한 반면, Kravchuk은 대서방 관계강화를 주장
o 96. 6. 28 신헌법 채택
o 98. 3. 29 총선실시
- 지역구, 정당명부에 의한 비례대표제로 각각 225명씩 450명 선출
- 10여 개 군소정당이 연합, 여당 역할 수행

99. 11월 제3대 대선 이후

o 99.11.14 Kuchma 대통령과 시모넨코 공산당 후보간 결선 투표
- 공산주의로의 회귀 반대세력 및 젊은 층 유권자의 지지로 Kucham 대통령이 큰 표차로 재선(56.25%대 37.8%)
o 99.11.30 Kuchma 대통령 제3대 대통령 취임
- EU 가입 및 친서방,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강화 등을 주요
외교 목표로 제시
- 대선 압승을 배경으로 강력한 개혁정책 추진
o 2000.4.16 국민투표 실시
- Kuchma 대통령은 개혁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국회 내 반정부세력 견제 등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 압도적 찬성표 획득
o 2001.3.9 Kuchma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발생
- 2001. 1월 Kuchma 대통령은 Yushchenko 총리와 함께 개혁추진 성향의 대표적 인물인 Tymoshenko 연료.에너지담당 부총리를 전격 해임.
- 2001년초 언론인 Gongadze 살해사건 관련 Kuchma 대통령의 연루를 시사하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됨.
- Kuchma 대통령은 94년 취임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확고한 권력장악으로 위기 극복

3) 2002. 3. 31 총선

o 해임된 Yushchenko 총리는 ‘Our Ukraine' 정당연합을 창설,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
- Our Ukraine은 Rukh당, 개혁질서당, 기민당 등 10개의 정당연합체
o 친정부 여당 역할을 수행해 온 중도 성향의 5개 정당(노동당, 인민당, 지역당, 농민당, 기업가연맹당)은 ‘For a United Ukraine' 정당연합을 창설
o 2002.3.31 총선에서 Our Ukraine 정당연합이 승리
- 친 정부 성향의 For a United Ukraine 정당연합도 100석을 상회하는 의석을 확보하였고, 공산당도 여전히 20%의 지지율 득표

4) 헌법개정 추진

o 2002.8월, Kuchma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식사에서 정치체제 개혁 필요성 제기
o 2004.4.8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권한 축소 및 국회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 부결
o 2004.11.22 이후 전개된 ‘Orange 혁명’ 과정에서 여야간 대타협을 통해 의회중심제를 요지로 한 헌법개정안 채택

※ 헌법개정 요지

1. 국회가 국무총리, 국무위원 및 기타 중앙정부의 기관장에 대한 임면권을 가짐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회 중심제로 변경).
- 국무총리는 원내 다수당의 제의로 대통령이 임명 제청
- 각료 중 외무, 국방 및 국가보안부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명 제청
- 나머지 모든 국무위원 및 중앙정부 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국무총리가 임명 제청
2. 새 대통령 선출 시 국무총리(및 내각)는 총사퇴
- 다만, 2004년 대선 후 구성되는 내각 및 국무총리는 2006년 총선으로 새 국회 출범 시 사퇴
3. 국회의원 임기는 5년으로 연장(현 국회의원 임기는 4년)
- 정당명부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당적 이탈 시 의원직 상실
4. 대통령은 다음의 경우에 국회 해산 가능
- 국회 개원 1개월 내에 원내 다수당(연립) 구성에 실패 시
- 내각 사퇴 후 6개월 이내 신 내각 구성 실패 시
- 정기국회 개원 후 30일내 본회의 소집 불가시
5.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수행.
6. 동 개헌안의 발효시기는 국회 1회독을 마친 지방정부 조직에 관한 헌법조항 개정안 (법안 3207-1호)이 2005.9.1까지 채택되는 경우는 동 시기에 맞추어 발효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2006.1.1부터 발효함.

최근 정세

1) 제4대 대통령 선거

※ Orange 혁명

☞ 발 단
대통령 선거 제1차 투표(2004. 10. 31)에서 여.야 후보 모두 총 투표의 과반수 확보 실패에 이어 실시된 결선투표(2004. 11. 21)에서 Yanukovych 여당후보가 Yushchenko 야당후보를 87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발표(11.24)되자, 야권은 동 결과가 출구조사와 상반된다고 하면서 재선거 실시를 주장(11. 27)하면서 지지자들에게 군중집회 참여를 독려.

☞ 주 요 경 과
· 11. 22(월)
야권은 결선투표 다음날인 11. 22(월) 이른 아침부터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 주변에 5만 명 정도의 대규모 옥외 군중집회를 개최하여 결선투표에서 부정투표가 엄청난 규모로 자행되었다고 하면서 중앙선관위의 투표집계 현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국회의장에게 국회 특별회의 소집을 요구. 중앙선관위가 1차 투표 때와는 달리 개표결과를 신속히 발표했는데, 선거 다음 날인 11. 22(월) 오후에 2차 투표의 99.38%에 대한 개표결과를 발표하여 중앙선관위가 Yanukovych 여당후보의 승리를 조기에 공식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야권의 의구심을 증폭.
· 11. 24(수)
야권에서 11. 24(수) 결선투표 재실시를 제의한지 몇 시간 안 되어 선관위가 2차 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여 Yanukovych 여당후보의 승리를 선언하자, 야권은 구국위원회를 결성하고 국민들에게 총파업을 촉구.
· 11. 25(목)
대법원이 선거결과에 대한 야당의 이의신청을 접수하고, 폴란드 및 리투아니아 대통령, Solana EU 고위대표, OSCE 사무총장 등이 사태 중재협의(Round Table)를 위한 우크라이나 방문 결정으로 동 11. 25 저녁부터 군중시위 열기가 현저히 확산되어 독립광장 주변 시위대 규모가 30만에 이름.
· 11. 27(토)
국회가 결선투표 무효를 결정한 데 이어 국방부장관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
· 11. 28(일)에 Kuchma 대통령이 국가 안보.방위위원회를 소집하여 위기상황 타개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남동부 지역에서 대규모의 지방정부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어 11. 27 국회결정을 규탄하고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이탈 불사의사를 표명함.
· 11. 30(화)
남동부 지역의 분리움직임이 진정된 가운데 정치적 해결을 위한 국회 내 여야가 협상을 이어감. ·
· 12. 1(수)
국회에서 Yanukovych 총리 정부에 대한 불신임이 결의되고 Kuchma 대통령, 여야 대통령 후보 및 외부 중재인이 참가한 제2차 중재회의에서 정치적 타협안이 합의됨.
(무력불사용, 대법원 판결 이후 선거절차 종결, 헌법/관련법 개정 및 신정부 구성 등)
· 12. 3(금)
대법원이 11. 21자 결선투표 결과 무효 및 12. 26 결선투표 재실시를 결정하고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경질을 요청함.
· 12. 8(수), 여야 대타협으로 국회에서 헌법개정안, 대통령 선거법안 일괄통과 및 중앙 선거관리위원 교체를 결정함.
· 12. 26(일) 재투표 실시
- 2005. 1. 10(월), 중앙선관위가 Yushchenko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발표함.

☞ 의 의
Orange 혁명은 독립 후 유지되어 온 과도체제 및 전 정권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를 의미함. 우크라이나는 독립직후 혼란기와 지난 10년간의 Kuchma 대통령 집권기 동안 구체제 탈피와 새 체제 정착이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권력과 부의 편중, 인권침해 등 정치.경제.사회적 문제가 만연되었는데, 국민들은 선거혁명을 통해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Yanukovych 총리를 여권 후보로 내세운 Kuchma 대통령과 여권의 집권연장 기도를 거부함.
Orange 혁명은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 및 법의 지배가 자리잡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며, 인근국가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봄. 변화와 개혁을 향한 국민의 열망이 Orange 혁명에서 장기간 평화적으로 표현되었고, 이에 대해 군 및 치안당국과 법원이 중립적 입장을 지켰으며 국회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여야 정치권이 헌법개정 및 대통령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에 합의함

2) Yushchenko 대통령 취임 및 Tymoshenko 내각 구성
3) 행정개혁
4) Yushchenko 대통령 계열 신당 창당
5) 언론인 살해사건 수사 확대
6) 여권 내 갈등과 협력
7) Tymoshenko 총리 해임 및 Yekhanurov 내각 발족

Zinchenko 대통령 전 비서실장의 사임(9. 5) 이후 표출된 여권 내 양진영(Tymoshenko 총리계열과 Poroshenko 국가 안보.방위 사무총장)간의 갈등이 Yushchenko 대통령의 봉합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Yushchenko 대통령은 9. 8 Tymoshenko 총리와 Poroshenko 국가 안보.방위 사무총장을 전격해임하고 자신이 이끄는 Our Ukraine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며 동부 드니프로페트롭스크 주지사인 Yuriy Yekhanurov를 총리 서리로 임명하였다. Yekhanurov 총리 서리에 대한 국회인준은 9. 20 1차 시도에 이어 9. 22(목) 정족수 226표를 훨씬 상회한 289표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친서방성향의 대통령과 친러성향의 총리간에 정치, 경제 등과 관련 각종정책에 이견이 노출되어 갈등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음

8) 대통령의 국회해산 명령 및 조기 총선 후 신내각 구성

Yushchenko 대통령은 2007.4.2 국회해산, 조기총선을 명령하여 여․야간 정쟁을 지속하다 여․야간 합의에 의하여 9.30(일) 총선을 실시했다 (국회해산 사유: coalition측의 야당의원 매수, 확대시도 등). 그 결과, 9.30 조기총선 결과 아래 5개정당이 3%이상 득표하여 국회에 진출하였다.

10.27 공식선거결과 발표, 11.23 새국회가 개원된 후 대통령 소속의 Our Ukraine-People's Self-Defense Bloc 과 Yulia Tymoshenko Bloc의 두 정당 소속 국회의원 227명이 국회다수당연합(coalition) 구성에 합의하여 새로운 coalition 이 탄생하였다. 또한 2007.12.18에는 Yulia Tymoshenko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안이 국회에서 가결됨. 또한 동 일자에 기타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안도 국회에서 가결되어 새로운 친서방 성향의 내각이 수립되었다.

외교

대외정책 기조

독립 이후 WTO, NATO 및 EU 가입 추진과 동시에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관계 유지하며 서방과의 관계 개선 및 유럽합류를 지향하면서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Kuchma 전 대통령 정부 또한 동서간 균형외교 노선을 유지하였으나, 집권 후반기 특히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3년 하반기부터 다소 러시아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2003년 하반기 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4국간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CES) 협정 추진에 이어 2004년 우.러 양국간 육상국경 확정과 흑해지역인 아조프 해, 케르츠 해협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였고, 2004. 12월 대선에서 시장경제 및 EU. 서방으로의 합류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Yushchenko 현 대통령 정부는 Kuchma 전 대통령 정부에 비해 보다 친서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동시에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요 상대 별 외교정책

1) EU와의 협력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계속 유럽합류, EU가입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EU와의 관계 확대를 적극 추진해 오고 있으나, EU는 우크라이나를 유럽국가(a European Country)에 속한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격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구체적인 가입일정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측의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Kuchma 전 대통령은 2002. 6월 European Choice제하 국정연설에서 EU가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언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자 2004.7월에는 군사노선 수정을 통해 EU가입을 당면 목표에서 삭제하는 등 EU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98. 3월 체결된 동반자협력 협정(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과 04. 5월 EU 확대 이후 새로이 국경을 접하게 된 국가에 대한 EU의 인근국가정책(European Neighborhood Policy)이 현재 EU/ 우크라이나 협력관계의 기본틀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 기본틀 아래 양자간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이 마련되어 있다. 2005.1.23 출범한 Yushchenko 대통령 정부는 선거공약대로 EU에의 가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였으며 EU도 우크라이나의 Orange 혁명을 평가하여 행동계획(Action Plan)의 확대, 강화하는데 동의했으나 EU 가입 또는 준회원국 지위부여를 바라는 우크라이나측의 기대는 아직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2)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

‘90년 중반까지는 흑해함대, 크림 문제, 구소련의 권리, 의무 승계 문제, 우크라이나 내 핵무기 등 전략무기 폐기문제 등을 위요하여 갈등이 계속되었으나, ‘97. 5월 우-러 우호협력 협정(독립 및 영토 보존 확약), ‘98. 2월 우-러 경제협력 협정(가스, 원유대금 부채 지불 연장 등) 등의 채택으로 우호, 협력 관계를 복원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원자력 연료(100%), 원유(70%), 천연가스(50%) 등 총 에너지의 60%를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0년 들어, Kuchma 대통령은 우, 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이후 Putin 대통령과 연간 7~8회 회담을 갖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벨로루시, 카자흐스탄과 함께 4개국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설립협정을 맺고 구체사항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2004년 말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러시아가 Yanukovych 후보(당시 여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함으로써 2005. 1월 새로 출범한 Yushchenko 대통령 정부와 러시아와의 관계가 다소 냉각기를 맞고 있으나 양국간의 역사적, 인종적, 문화적 특수 관계에 비추어 협력 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Yushchenko 대통령도 취임 후 제일 먼저 모스크바를 방문 Putin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러시아를 '영원한 동반자(eternal partner)'로 규정하였다.

3) CIS와의 협력

CIS 국가간 정치, 군사, 경제 통합을 희망하는 러시아의 적극적 입장에 반하여,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는 CIS가 주권국가간의 경제협력체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이다. 우크라이나는 CIS 정식 회원국(CIS Charter에 비서명)이 아니면서 CIS 정상회의 유치 의장국 역임 등 사실상 모든 CIS 활동에 참여 중이다. CIS 4개국 공동경제권(Common Economic Space) 설립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관세동맹으로의 발전에는 반대하고,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역점을 두자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러시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유럽합류, EU가입을 최우선 과제로 표방하고 있는 Yushchenko 대통령의 새 정부는 CIS 협력에 Kuchma 전 대통령 정부에 비해 보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미국과의 친선 및 우호

Kuchma 전 대통령 정부는 94년 대통령 선거 시에는 친러 정책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 후에는 경제적 지원 문제 등을 감안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2002. 9월 제기된 우크라이나의 Kolchuga 레이더 이라크 판매 의혹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지원 보류 등 양국관계가 악화되었으나, 2003. 3월이래 단계적으로 1,600여명의 기갑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함으로써 양국관계 개선에 성공한다. 미국은 러시아 견제 등 지정학적 고려에서 Clinton 대통령의 2차례(95. 5월 및 00. 6월) 방우 등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발전 및 협력강화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9. 11 테러공격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미국주도의 국제적 연대에 우크라이나도 인도적 지원 군 수송기의 영공통과 및 비행장 사용 허가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및 유럽에의 합류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Yushchenko 대통령 정부의 출범으로 우크라이나와 미국 양국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5) NATO와의 협력

우크라이나는 '97년이래 NATO와 special partnership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2002년에 NATO 가입을 공식 표명하고 이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04. 6. 28~29 개최 이스탄불 정상회의에 Kuchma 대통령 등 고위급 대표단 참석을 통해 NATO와의 협력관계 격상, 가능하면 Membership Action Plan 관계 설정을 모색하였으나, 이에 실패한 뒤 NATO 가입을 장기과제로 추진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하였다. 2004. 12월에는 오렌지 혁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NATO/우크라이나 관계에 진전이 있으며 2006년 중 Membership Action Plan가입, 2009년 가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여.야 정치인 간 이견이 많고 NATO가입을 반대하는 국민의견도 많아 최종적인 가입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6) 대몰도바 관계

Kuchma 전 대통령 정부는 Transdniestria(TD)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을 의식하여 TD 지역과 우크라이나간 국경통과 문제 등 몰도바/TD 지역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TD 분리주의 세력 및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해 왔다. 2004. 12월 대선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의 자치강화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Yushchenko 신정부는 몰도바/TD 문제를 TD 지역 내 러시아군의 계속 주둔, 러시아의 구소련 지역 내 영향력 유지노력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TD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7 대루마니아 관계

□ Zmiyiniy섬 영유권 문제
흑해 내 Serpent Island의 국제법상 지위를 위요한 우크라이나-루마니아간 흑해수역 경계 설정문제관련, 루마니아의 2004. 9. 16자 국제 사법재판소(ICJ) 제소에 우크라이나가 동년 9. 28자로 적극 대응키로 함에 따라 동건이 ICJ에 계류 중이며 이와는 별도로 우.루 양국은 2005. 3. 22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동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함.
95. 12월 루마니아 정부는 1948년 루마니아가 구소련에 양도한 흑해내 Zmiyiny섬의 우크라이나 영유권에 이의 제기한 바,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우크라이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루마니아 주장을 일축
1997년 양국은 ICJ를 통한 해결을 규정한 조약을 체결한 뒤, Iliescu 루마니아 대통령이 2002. 9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1997년 조약에 의거 2003. 6월까지는 국경조약에 서명키로 합의. 동 섬은 주변 대륙붕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향후 양국간 주요 현안으로 지속될 전망

□ 다뉴브-흑해간 운하문제
또한, 우크라이나가 2004. 8월 중순에 개통한 170㎞에 달하는 다뉴브-흑해간 운하 복원공사에 대해 다뉴브강 하류 선박 통행료 수입을 등과 관련하여 경제적 이해를 달리하는 루마니아가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이 문제도 양자간 협의를 통한 해결 방안 모색되고 있음.

8) 세바스토폴 군항 및 흑해함대 문제

우크라이나 독립 후 크리미아 반도 세바스토폴항을 모항(흑해함대 시설의 80% 위치)으로 하는 흑해함대의 분할 방침에 합의(Sochi Agreement)하였다. 95. 6월에는 Kuchma 대통령과 Yeltsin 대통령간 흑해함대 분할원칙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97. 5월에는 양국 총리간 “흑해함대 분할협정”에 서명하였다.

9) 크림 자치공화국 문제

러시아인이 67%를 차지하고 있는 크림 반도는 91년부터 자치공화국 승격 및 독립운동이 전개되어 왔으며, 러시아 및 러시아계 주민이 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반환하라는 주장도 있어왔다. 현재 우크라이나 헌법에 의하여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나, 크림 의회는 공용어를 러시아어로 변경할 것을 결의하는 등(97. 10) 중앙 정부와의 대립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방 정책 기조

NATO 가입을 목표로 군 조직 및 체제를 재편성하고 무기를 현대화하는 등 NATO 기준으로 군 개혁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NATO 및 서방의 집단안보 체제에 적극 동참하여 국제 군사협력을 제고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의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군사력 현황

군사분야 주요 국제 협력

1) 핵무기 폐기
2) 이라크 평화유지군 파견

경 제

주요 경제지표

[연도별 거시경제 지표]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5 2006 2007 2008 2009
인구(백만 명/연말) 47.1 46.6 46.4 46.2 46.0 (7.1일자)
GDP (십억Hr) 363.1 561.1 712.9 949 n/a
(십억$) 70.9 111.1 141.2 180.2 n/a
1인당 GDP ($) 1,759.0 2,101.0 2,601.0 3,218 n/a
실질GDP성장률(%) 2.7 7.0 7.3 2.1 -18.0 (2/4분기)
외환보유고($백만) 19,391 22,358 32,479 31,543 28,871 (8월말)
재할인율(%) 9.5 8.5 8.0 12.0 10.25 (8.12일)
대미평균환율(UAH/$) 5.12 5.05 5.05 7.78 7.8066 (8월중)

출처: 주러 우크라이나 대사관

[상품교역동향]

(단위 : 백만 달러)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1-5
총교역 61,668 70,428 83,402 109,918 152,538 85,139 27,459
수출 32,672 34,287 38,368 49,248 67,003 39,703 18,769
수입 28,996 36,141 45,034 60,670 85,535 45,436 20,869
수지 3,676 -1,854 -6,667 -11,422 -18,532 -5,733 –2,100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주요 경제정책

1) 자본주의 경제 정책과 WTO 가입

1991년 자본주의 경제로 체제 도입 이후 국영 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도입 등 꾸준히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 WTO 가입을 신청한 이후 2004년 3월 의류 신발 전자제품 등의 수입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2004년 7월에는 CD/DVD 불법복제 처벌강화와 식용유 등 일부 농산물 수입관세 인하를 단행하였다. 2006년 12월에는 은행, 보험 등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07년 6월에는 무역용 외환사용기간을 확대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008년 5월 16일 125번 째 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하였다.

2) 갑작스러운 버블붕괴로 IMF 구제금융 지원 요청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실물경제로 파급되면서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수출품목인 철강제품의 가격하락 및 수요감소로 외환부족현상이 심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2008년 10월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2008년 11월 5일 1차 지원금 45억 달러가 지원되었다.
2009년 2월 15일 지원예정이던 2차 지원금은 1차 이행실적검토작업이 지연되면서 늦어져 5월 8일에서야 28억 달러가 지원되었고, 7월 28일에는 3차 지원금으로 33억 달러가 지원되었다.
2009년 10월에 4차 지원금 지원을 위한 3차 이행실적 검토작업이 예정되어 있으나 IMF측에서 협력중단을 경고하였고 우크라이나 재무부에서도 협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밝혀 협상과정이 쉽지 않고 지원일정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 미화 환율은 2005년 달러당 5.1247 그리브나에서 2006년 및 2007년 각 5.05 그리브나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2008년 10월 금융위기를 맞이하고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면서 환율이 요동치면서 5.2672 그리브나로 올랐다.(이상 중앙은행 공식환율, 연평균 기준)
2009년에는 1월부터 4월까지 달러당 7.7 그리브나를 유지하다가 5월 7.653 그리브나, 6월 7.6158 그리브나, 7월 7.6481 그리브나, 8월 7.8066 그리브나로 계속 오름세를 보였다. 2009년 9월 7일 자 중앙은행 고시환율은 달러당 7.995 그리브나를 기록하고 있다.

3) 산업 육성 정책

우크라이나는 국가차원에서 전체 산업을 대상으로 육성하는 포괄적인 산업육성정책(예: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등)은 없고 개별 산업별로 육성책이 수립, 시행되고 있다.
현지정부는 철강산업에 수출의 40%를 의지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변동에 따라 수출량 및 수출가격이 급변하고 이것이 경제의 안전적 성장을 해친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소련시절 우크라이나에는 소련정부의 지역별 산업배치정책에 따라서 철강, 조선, 우주, 항공 등과 같은 산업시설이 밀집된 지역 중 하나였으나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정부지원이나 정부의 구매가 크게 감소하여 시설투자가 거의 중단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산업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4) 통화 안정, 외환 보유고 확대 정책에서 인플레 억제 정책으로

1998년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 물가 안정 보다는 환율 안정과 외환 보유고 확대 정책을 지속 유지하고 있다. 대 미화 환율은 2001년 5.37 그리브나에서 2007년 2월 5.05 그리브나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환 보유고도 2001년 29억 달러에서 2006년 187억 달러로640 % 증가하였다. 외환 보유고가 충분히 확대되고 통화가 안정됨에 따라서 2004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크게 확대된 사회 복지(봉급 및 연금 인상 등) 경비를 국영 기업의 추가 민영화를 통해 조달하여 재정 적자 확대를 억제하고 있으며, 중앙 은행은 통화 정책의 우선 과제를 과거의 환율 안정에서 물가 안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단위 : 백만 달러)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5) 친러 에너지 협력 강화

Orange 혁명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하여 짐에 따라 추진하던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정책은 2006년 7월 야누코 비치 총리 선임 이후 급격히 퇴조하고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야 협력을 위한 실무 추진단을 2007년 4월부터 구성키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9.30 총선 이후 연말 새로운 내각 구성에 따라 정책기조가 변경될 전망이다.

[경제성장 추이 및 전망]

최근 외환보유고 추이(금 등 전체 외환보유고)

출처: KOTRA & globalwindow.org


TOP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449-791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외대로 81
국제사회교육원 연구동 412호 Tel.031-330-4852 Fax.031-330-4851 E-Mail:irs@hufs.ac.kr

copyright(C) 2011 Institiute of russian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RESERVED.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