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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ERBAIJANI

역 사

고대 아제르바이잔 ~ 소 연방

고부스탄의 구석기 시대 암각화

[고부스탄의 구석기 시대 암각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이라 불리는 민족이 형성된 것은 13세기부터이다. 이 지역은 신석기 시대 및 초기 청동기 시대에는 이미 농목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BC 7세기에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정복된 것이 기록에 의해 알려져 있다. BC 5세기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으며, BC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 이곳에 왕조를 세운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아트로파페스가 BC 2세기에 파르티아에게 정복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인의 조상인 알바니아인이 독립국가를 세워 알바니아라 하였다. 그 후 3세기부터 사산조 페르시아, 7세기 중엽부터는 아랍의 지배를 받고, 11세기에는 셀쥬크튀르크에 정복되었다.

1256년 몽고의 재배와 함께 이 지역의 말라가라는 곳이 시리아로부터 중앙 아시아에 이르는 중심도시가 되었다. 몽고 후에는 타브리즈의 수도로 터키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나, 후에 이란계 사파비 왕조(1502-1722)를 성립시키는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이란의 카자르 왕조(1796-1924) 초기, 제정 러시아의 카스피해 연안 지방 진출에 의해서 러시아-터키 전쟁(1806-1812)이 일어났다. 그 결과 제정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엘리자벳 폴리스크, 바쿠에 양현을 설치하였다. 한편 타브리즈는 한 때 러시아군이 통치하였으나, 1921년에 페르시아의 통치권이 회복되어 아라크스강을 경계로 남부는 이란령으로 남게 되었다.

1936년 트랜스코카사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폐지하고,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소 연방 구성 공화국이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민족주의적 편향을 이유로 공화국 내 민족 지도자들이 대거 숙청당하였다.

소 연방~ 독립국가연합

91년 12월 11일, 옐친이 제안하고 추진했던 독립국가 연합에 이슬람 공화국들이 가담을 시사했고, 아제르바이잔도 포함되었다. 12월 13일 소 연방이 해체되었다.

91년 12월 7일, 아제르바이잔의 아에즈 무탈리보프 대통령은 자신이 공화국 내 주둔 전략군을 제외한 모든 군대의 총 사령관직을 맡을 것을 선언함으로 CIS 내에서의 정치 형태의 변화-즉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의-를 천명했다. CIS 형성 전 이슬람권인 중앙 아시아 5개국과 아제르바이잔의 이슬람 연방 형성의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실제 추진되었다. CIS 출범 시, 러시아 공화국의 주도권 행사는 특별히 중앙 아시아 지역 공화국의 심한 반발을 일으켰고, 그들이 독자적 연방 형성을 시도하게 하였다.

민족 분규사

1)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위치

[나고르노 카라바흐 위치]

아제르바이잔의 남서쪽 카프카즈 산악지대에 위치한 나고르니 카라바흐 지역(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의 25% 차지)은 18세기에 아르메니아가 통치하던 지역이었으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아제르바이잔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고르바쵸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인해 민족주의가 부활하면서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아르메니아인들과 1988년 카라바흐 지역에서 분쟁이 시작됨.

19991년 10월에는 아르메니아인 분리주의자들이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독립국가를 선언 하면서 내전 확대로 이어졌다. 이 내전으로 인해 카라바흐 지역과 아르메니아에 살던 80 만 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 난민이 발생하는 극도의 혼란을 겪었으며, 1994년부터 아르메니아인이 카라바흐 대부분을 차지한 상태로 휴전 하였다.

2004년부터 유럽안전협력기구(OSCE)산하 민스크그룹의 후원으로 양국은 평화적인 분쟁해결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08년 3월 5일 뉴스 발췌]

아르메니아에서 경찰과 야당 시위대의 충돌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아르메니아 군이 이웃 국가 아제르바이잔 군과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주의 국경에서 무력 충돌했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르단 오스칸얀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은 이 교전으로 아제르바이잔인 2명과 아르메니아인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이번 교전과 관련, 아르메니아가 국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도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지난 1일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경찰과 야당 시위대의 충돌로 집회 참가자 8명이 숨지는 등 소요가 발생한 바 있다.
양국간 교전이 발생한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 통치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주의 북서부 마르다케르트 지역으로 양국은 지난 1994년 아르메니아가 전면전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한 뒤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무력을 통해 영토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군장비와 무기 등을 꾸준히 구입, 군비를 보충해왔다.
한편, 아르메니아 경찰은 이번 비상사태를 촉발한 시위 주동자로 야당 인사 30여명을 체포했다. 야당 측은 지난달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현 대통령의 측근인 세르브 사르키샨 총리가 당선된 것과 관련, 정부 당국의 개입에 의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이와 관련, 국제선거감시기구들은 선거가 "전반적으로 민주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투표 집계에 있어서 일부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현재 '유럽위원회'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같은 범 유럽 기구들은 전 소련연방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안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2) 카스피 해 영유권 분쟁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 이란 등 카스피 해 연안국 사이에 명확한 카스피 해의 영유권이 확정되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가장 국력이 약한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남아 있다.

1991년 구 소련 붕괴 이전 소련과 이란은 1921년과 1940년 양국간 협정을 통해 카스피 해의 경계를 설정하였지만,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새로이 독립하면서 카스피 해의 영유권과 개발을 둘러싼 5개 연안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직까지 어떠한 경계결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남부 카스피 해 지역에서는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 하였으며, 특히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간헐적인 군사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은 해안선에 비례하여 카스피 해를 분할하는 방식(modified median principle)에 잠정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란은 5개국 균등분할(equal division)을 주장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도 영유권 분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의 관계국 회의에도 논의진전이 답보상태에 있으며, 몇몇 국가들은 양자간 협정을 통해 영유권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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