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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onia

역 사

고 대

건국초기부터 통일 국가를 이루어 잠시 번영의 역사를 누리기도 했던 리투아니아와는 달리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1차 대전 말까지 나라를 건설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민족들과, 그들의 땅 위에 '리보니아'라는 또 다른 나라를 만든 독일인의 역사와 또 근대 이후 그들을 지배한 러시아의 확정의 역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발트인 종에 속하는 인종이 아니라, 핀란드와 맥을 같이 하는 핀우그르족에 속한다. 에스토니아 역시 기독교화가 늦게 진행되었고, 다른 발트인들처럼 자신들의 신앙에 바탕을 둔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2세기 독일인들이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여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이전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이 직접 세운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권력으로서의 기독교는 라트비아에서와 마찬가지로 극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본격적인 독일인들의 선교활동은 독일 브레맨의 주교 알베르트공이 현재 리가에 진출하고 난 후이다. 1208년부터 기독교화하려는 독일인들 뿐 아니라 러시아, 스웨덴 사이에서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려는 욕구가 강렬해지자 알베르트 공은 덴마크의 왕과 손을 잡고 연합을 구성하여, 1209년 탈린 건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탈린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서 거의 철수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었다. 전설에 의하면 왕이 철수를 결정하고 덴마크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얀 십자가가 가운데 있는 빨간 깃발이 내려와 왕의 손에 떨어졌고, 그것을 신의 뜻으로 여긴 왕은 용기를 얻어 마침내 탈린을 공략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 깃발은 덴마크의 깃발로 쓰이고 있다. 탈린이라는 도시의 명칭은 '덴마크인의 도시'라는 뜻이고, 1346년 덴마크가 탈린을 리보니아에 은 약 4.5톤을 팔아 버릴 때까지 덴마크왕의 손에 있게 된다.
1700년대는 북부전쟁 시대이다. 러시아와 리보니아 사이에 있던 이 전쟁과 그 뒤를 이은 기근으로 기록에 의하면 단지 13만 5천 여명 에스토니아인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리보니아가 러시아의 손에 들어간 후에도 그 곳에 살던 독일인들은 자신들만의 특권과 자치권을 가질 수 있었고, 모든 사회적 활동이 독일어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차차 독일 지주들의 특권에 한계가 생기면서, 1819년에 짜르의 명으로 발트 지역 전체에 노예제도가 폐지 된다. 그 후 자유를 찾은 농민들의 활동이 늘어나고,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서, 19세기에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지식인들이 대거 진출하게 된다.

러시아로의 합병(19세기)

1881년 러시아의 러시아화가 심해지고 발트독일인들의 권력이 붕괴되면서 러시아어가 공식어로 등장하고 학교에서의 에스토니아어 사용이 금지되는 등 탄압이 시작되자 에스토니아 민족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1차대전이 시작할 때까지 에스토니아의 인구는 100만에 이르렀다. 1918년 2월 에스토니아 해방위원회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탈린 키다리 허먼 탑위에 에스토니아 3색 기를 게양하지만, 그 다음날 독일인들이 에스토니아를 침공한다. 독일의 지배는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이 패하자 에스토니아의 독립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일 후 소련군이 침략하여 에스토니아에는 그들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이 시작되고, 그 작고 무장도 많이 되지 않은 에스토니아 군대는 소련군을 탈린 밖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본토 독일인들을 대신하여 발트독일인들이 군대를 조직하고 발트 지역을 병합하기를 시도하지만, 1919년 6월 23일 에스토니아 군은 북부라트비아에서 발트독일군을 무찌른다(이 날은 현재도 국경일로 지켜지고 있다). 후에 2차 대전 발발까지 에스토니아는 농업, 교육, 경제, 정치 분야에 괄목한 만한 성장을 보이게 된다. 1924년 12월 1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 쿠데타가 있었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경제적 성장은 러시아와 독일의 비밀조약으로 인해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내에 들어가고, 소련의 강제이주와 집단화가 시작되지만, 그 후 독일이 발트 지역을 복속하고, 독일이 다시 패배하자 온 발트3국이 소련의 공화국으로 전략하여 에스토니아는 다른 발트3국과 함께 장막 속에 갇히게 된다. 압제적인 소련의 지배는 소련이 갑자기 붕괴하게 될 때까지 40년간 지속된다.

에스토니아의 독립

고르바초프가 빼레스트로이까 정치를 펼치기 시작하자 차근차근 발트 민족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1989년에는 탈린에서 빌뉴스까지 사람들이 손을 잡아 만든 '발트의 길' 행사를 통해 독립에의 의지를 만방에 알리게 되고, 1990년 3월 30일 독립을 선언했으며 마침내1991년 8월 20일 에스토니아 독립국가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1992년 6월 새 헌법이 채택된 후 그 해 9월에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으며, 민족주의 연합정당인 이사마연합의 렌나르토 메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스토니아는 독립 후 러시아 이민자들 때문에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놓였었다. 1940년 이후 에스토니아로 이민 온 상당 수의 러시아인들에세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주기 위해서는 언어 습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선결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독립 후에도 주둔해 문제가 되었던 러시아 군대는 1994년 8월 에스토니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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