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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onia

사회•문화

도시의 성격

에스토니아에는 6개의 지방이 있으며, 중앙도시의 성격에 따라 그 지방의 일반적인 성격 또한 차이가 난다. 수도가 하류마(harjumaa)는 귀족적인 성격, 대학도시가 위치한 타르투마(tartumaa)는 학자적인 성격, 공업지대가 많은 북동부의 비루마(virumaa)는 노동자적인 성격, 남부지역인 물키마(mulgimaa)는 부자들의 성격, 남동쪽의 세투마(setumaa)는 유흥을 좋아하는 성격, 섬 지역 사아레마(saaremaa)는 뱃사람다운 성격이 난다고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행정구역]

1) 수도 탈린
탈린

[탈린]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

톰페아 성

[톰페아 성]

성 브리짓 수도원

[성 브리짓 수도원]

유럽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고대도시 중 하나인 탈린은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며, 약 44만 여명이 살고 있다. 탈린은 핀란드 만 남동해안에 접해 있으며, 에스토니아 중북부에 위치해 있다. 헬싱키에서 해로로 80km 떨어져 있다. 탈린에서 가장 큰 호수는 윌레미스테 호(Ülemiste)이다. 많은 관광지 중에서 핀란드만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중세 도시 탈린(Tallinn)의 Old Town은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도시이다. 탈린은 회색의 성벽과 뾰족한 탑, 흰 벽을 가진 사원과 교회가 즐비한 이 곳은 13세기 덴마크 이주민들이 정착해서 지은 도시라고 한다. '탈린'이라는 지명은 '덴마크 사람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위의 사진은 구 시청광장으로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딕식으로 지어진 시청건물이다. 1406년에 건설되어 역사가 무려 600년이나 된다.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은 탈린에서 가장 크고 장엄한 돔을 가진 성당이다. 크고 풍성하게 장식된 러시아 정교회는 에스토니아가 러시아의 왕정치하에 있던 1900년에 툼페아 언덕에 세워졌다. 교회의 건축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미하일 프레오브라즈헨스키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노브고라드의 왕자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성당건축 전에 그곳에는 마틴루터의 기념비와 더불어 툼페아성 앞의 같은 자리에 정원이 있었다. 현재도 잘 보존되고 있어 탈린의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이다. 교회의 종탑은 11개의 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탈린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15톤의 무게이다. 그림14의 성 브리짓 두소원은 탈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언덕으로, 주위 도시보다 20~30미터 높게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폭 400미터, 길이 250미터의 고지대이다. 현재 이 툼페아 언덕의 툼페아 성은 툼페아성은 핑크 아르누보 양식으로 20세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최고의 머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에스토니아의 국회(Riigikogu)로 사용되고 있다[4].지우기 그림15의 성 브리짓 수도원은 1407년 탈린의 거상에 의해 기존 수도원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고딕 양식으로 건설 된 교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16세기 중반에 파괴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유일하게35m 높이의 석회암으로 된 천장과 옆 벽면만이 존재한다. 이 곳은 유일하게 남자 성직자가 거주 할 수 있도록 건축되었고 오늘날에는 관광과 휴식을 위한 명소로 이용되고 있다.
2) 타르투
타르투

[타르투]

타르투는 에스토니아의 제 2의 도시이자 최대의 교육도시이다. 수도 탈린에서 약 180km떨어져 있어 버스로 2시간 반정도 걸린다. 타르투를 일컫는 상징적인 말로 '좋은 생각의 도시'라고 한다. 탈린이 에스토니아의 수도로 중심도시라고 한다면 타르투는 '머리가 있는 도시'라고 하여 에스토니아의 지성인을 낳고 기르는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에스토니아의 교육문화부와 최고법원은 정치적 수도인 탈린에 있지 않고 타르투에 있다. 타르투는 전통적으로 에스토니아는 물론 발트3국 전체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신학문을 보급하는데 앞장선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6]지우기. 타르투의 인구는 1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교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현재 에스토니아의 3색 기도 당시 에스토니아 문화중흥운동을 이끌어 가던 타르투 학생회에서 사용하던 깃발이었다고 한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타르투가 건설된 것은 1030년이고 명시되어있지만 발트3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중세시대에는 무역의 중심지도 명성이 자자했지만 구 시가지와 건물들은 전쟁과 화재로 파괴되고 거의 남은 것이 없다. 구시가지는 탈린과 마찬가지로 저지대와 고지대로 나눌 수 있는데 시청광장과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저지대에 많이 몰려있다.
타르투 대학

[타르투 대학]

왼쪽의 사진은 타르투 대학으로 발트3국에서도 손 꼽히는 명문대학이다. 타르투 대학은 스웨덴의 왕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의 명에 의해 1632년 건설되었다. 외정시대와 전쟁 시 학교가 닫히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명실공히 에스토니아 최고의 대학으로, 에스토니아와 발트 지역의 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명문대학이다.
3) 나르바
이반고라드의 다리

[이반고라드의 다리]

인구 약 8만 3천. 나르바강(江)이 핀란드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류에 위치한다. 시의 기원은 13세기에 덴마크 성채의 보호 하에 건설된 이민 촌에서 비롯되었으며, 1346년 덴마크의 왕 발데마르 4세가 시를 튜턴 기사단에게 매도하였다. 1558년에는 러시아에 점령되었으며, 1581년에 스웨덴령이 되었다가 1704년 북방전쟁으로 다시 러시아령이 되었다. 1920년 에스토니아가 독립함에 따라 에스토니아의 도시가 되었으며, 1940년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1991년 8월 독립하였다.
직물업이 활발하며, 1955년 나르바강에는 수력발전소가 완성되었다. 또 서쪽 솔디나에는 함유혈암을 연료로 하는 발트 화력발전소가 있다. 나르바강 동안에는 러시아인이 건설한 이반고로드 요새, 서안에는 덴마크인이 건설한 헤르만 요새가 있다.현재 나르바는 나르바 이반고로드 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이루고 있다. 소련 시절 하나의 도시로 살아 가던 사람들이 소련 붕괴 이 후 주민 절반이상이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다. 나르바에는 6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이 중 2만 명이 러시아인이다.

언 어

에스토니아어는 리투아니아어나 라트비아어와는 달리 발트어에 속하는 언어가 아니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 헝가리어, 피레네 산맥의 바스크어처럼 유럽의 어느 언어권에도 속하지 않는 핀우그르어이다. 에스토니아어와 인도유럽어의 차이는 영어와 터키어의 차이와 같다고들 한다. 구 소련 공화국 내에서 핀우그르어를 쓰는 민족이 있지만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지는 못했다. LIVONIA라는 명칭을 만들어내게 한 리트비아 해안가의 리브인들의 언어도 현재 라트비아어와 다른 핀우르어였는데 현재는 사어가 되었다. 인도유럽어족의 언어가 아닌 만큼 주위의 국가와는 언어가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핀란드어와는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핀란드어를 하는 사람은 구태여 에스토니아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어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 중 하나이다. 핀란드어는 정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에스토니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에스토니아어는 인도유럽언어가 아니므로 명사에 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격이 14격이나 된다. 그러나 격변화가 우리말처럼 조사를 붙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상당히 동양적인 느낌의 언어이다.

인 종

에스토니아인(에스트인)이 68.6%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러시아인(人)지우기 25.6%, 나머지가 우크라이나인(2.1%), 벨라루시인(1.2%), 핀인(0.9%)• 유대인 등이다. 인구밀도는 공업이 활발한 북서부 탈린 지방이 비교적 높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급격한 공업화 때문에 1913년 19%에 불과하던 도시 인구가 1997년 74%로 늘어났다.

화 폐 - 크론 (kroon)

교육제도

에스토니아의 교육제도는 19학년까지를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는 12학년(초등 9년, 중등 3년)의 학제로 되어 있으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는 11학년제로 되어 있다..지우기 각각의 학교는 상대언어도 가르치고 있다. 현재 15세 이상 인구의 100%가 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 명

에스토니아인의 평균수명은 72세로 남자는 66.87세, 여자는 78.07 세이다.

교 통

1) 국제 교통

(1) 항 공

주 국제 공항은 탈린에 있다. 탈린 공항은 중심으로부터 약 4km 떨어져 있고 택시나 버스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터미널 건물은 매우 현대적이고 편리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탈린 항공은 탈린과 바르셀로나 브뤼셀, 코펜하겐, 런던, 끼예프, 밀라노, 로마, 모스크바, 스톡홀롬, 오슬로, 프랑크프루트, 뮌헨, 파리, 더블린, 심페리폴리, 비엔나, 두브로브니크, 빌뉴스, 민스크, 헬싱키와 연결되어 있다.

(2) 해로

해상으로는 몇몇의 페리 호들이 있다. Vikinh line, Linda line express, Tallink 등이다. 탈린에서 핀란드의 헬싱키와 스웨덴의 스톡홀롬, 핀란드의 Åland,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독일의 로스토크로와 연결이 되어있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향은 탈린과 북쪽으로 약80km 떨어져 있는 헬싱키이다. 여름에는 매일 많은 승객들이 이용한다. 에스토니아 기업인 탈링크 그룹은 2008년 현재 실자라인의 지분 50%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2007년에는 ‘2007 최고의 에스토니아 회사상’, ‘2007 에스토니아 최고 경쟁력 회사상’, ‘2007 관광 혁신상’ 등을 수상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www.portoftallinn.com 이곳에서 알 수 있다.

(3) 버스

탈린과 다른 유럽도시들과의 연결이 용이하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로 유로라인을 이용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eurolines.ee 사이트를 참조 한다.

(4) 기 차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도시들과의 연결은 버스가 용이하다. 더 많은 정보는 www.evrekspress.ee. 이 곳에서 얻을 수 있다.

2) 국내 교통
에스토니아의 도시들과의 버스 연결은 매우 발전되어 있다. 에스토니아 도시들간의 버스정보는www.bussireisid.ee, 기차는 www.elektriraudtee.ee 에서 알아 볼 수 있다.
도로 및 철도망: 도로 약30,300km(포장도로 약 29,200km) 철도 968km이다.

[12월 21일을 기해 동유럽에서도 국경이 사라지다]

2007년 12월 21일 자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사이의 물리적 국경이 사라져 마치 한 나라 지방을 이동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는 유럽 연합이라는 제도와는 별도로'센겐협정'이라고 하는 협정가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신생가입국도 유럽연합처럼 가입 이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 졌다. 특히 국경지역에 사는 발가와 발카 시민들은 국경을 지날 때마다 여권심사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사는 러시아 계 비시민권자들은 몇 주 동안 기다려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바로 눈 앞의 마을을 위해 수 십장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음악과 소설

계절의 변화, 농토, 가족문화, 사랑, 신화 등을 소재로 하는 구전 노래, 시, 찬가들이 풍부한 전통의 덕택으로 수 세기 동안의 외세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에스토니아의 토착 민속문화는 존속하였다. BC 천 년으로 거슬러가는 가장 오래된 에스토니아의 노래형식은 8음절의 멜로디를 기본으로 주제가 단계적으로 전개되는 고대 북유럽 룬의 멜로디이다. 에스토니아 현대문학은 19세기 초 시인 크리스티얀 야아크 페터르손(Kristjan Jaak Peterson)과 함께 시작한다.
민족서사시 칼레비포에그(Kalevipoeg)(칼레프의 아들)는19세기 중반 프레드리히 레인홀드 크레우츠발드(Freidrich Reinhold Kreutzwald)에 의해 쓰여졌다. 20세기 에스토니아 문학의 거장, 소설가 안톤 한센 탐마사아레(Anton Hansen Tammsaare)가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소설가 얀 쿠로스(Jan Kross)와 시인 야안 카플린스키(Jaan Kaplinski)가 있다.

주요종교

루터교(개신교)와 러시아정교이지만,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에스토니아인은 소수이다. 그 이유는 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은 교회를 독일인들의 귀족문화로 여겼고 대부분이 농노였던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거주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다른 발트 민족처럼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

전통음식

셀랸까

[셀랸까]

물기캅사스

[물기캅사스]

삘메니

[삘메니]

베리보르스트

[베리보르스트]

에스토니아 역시 다른 발트 국가와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풍족한 음식은 많이 없다. 일반적으로 에스토니아 민족이 먹었던 음식은 감자, 훈제된 생선과 빵 정도였다고 하며, 역사를 통해 에스토니아인들은 음식이 풍족 치 못해 얼마 전까지도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식탁에서 ‘맛있게 드세요’ 라는 인사대신 ‘빵이 좀 남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훈제생선 특히 민물송어(suitsukala)는 에스토니아의 특별음식이고, 소시지가 나올 때 채식주의자 보다는 흡혈귀를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철에는 신선한 돼지의 피와 내장으로 싼 소시지를 만든다. 선지소시지(verevorst)와 선지팬케이크(vere pannkoogid)는 대부분의 에스토니아 전통식당에서 먹어 볼 수 있다. 시럽 같은 바나탈린술 (Vana Tallinn liqueur)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할 정도로 달고, 매우 강하지만, 에스토니아 식단의 기본이다. 커피와 아주 잘 어울리며, 만일 견딜 수 있으면 우유나 샴페인에 띄운 얼음 위에 얹어 먹을 수 있다. 가장 좋은 에스토니아 맥주는 약한 사쿠(Saku)맥주와 사아레마아섬에서 만든 약간 강한 사아레(Saare)맥주가 있고, 향신료를 가미해서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hõõgvein)을 카페나 바에서 마실 수 있다.

축제 및 행사

에스토니아의 두 가지 주요축제는 몇 년에 한번씩 만 열린다. 발틱민속축제(The Baltika Folk Festival)는 발틱 및 여러 다른 민속전통에 중점을 두며 일주일간 음악, 춤, 전시회, 퍼레이드 등을 벌인다. 모든 에스토니아인이 참여하는 음악제(All-Estonian Song Festival)의 절정은, 3만 명의 합창단이 야외무대에서 에스토니아의 전통노래들을10만의 청중 앞에서 부르는 것이다. 해를 거치면서도 이 축제에는 고정된 레퍼토리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라는 곡으로, 이 곡은 에스토니아의 여류민족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 현 에스토니아의 국가가 금지되어있을 당시 제 2의 국가로 불리던 노래이다. 이 노래는 노래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곡으로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해 부르는 곡이다. 이 축제는 발트3국 전역으로 전파되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전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소련의 압박이 심할 당시에도 발트인들은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노래로 대응했기 때문에, 그들의 혁명은 ‘노래하는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스토니아인들은 6월 중순 탈린에서 멤메–타아티의 날(Memme-taadi Days)동안 그들의 민속문화를 기리는 행사를 벌린다. 6월 23일 밤은 하지축제의 절정인 하지전야제(Jaanipäev)가 있다. 신비한 힘이 있는 밤이라고 믿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하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시골로 가서 모닥불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며, 오직 이날 밤에만 꽃이 피어 그 꽃을 찾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전해지는 신비한 양치류의 꽃을 찾아 다닌다. 비루새루민속제(Viru Säru folk festival)는 짝수 해 7월 첫 째 주에 라헤마아 국립공원(Lahemaa National Park)에서 열린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귀신 하압살루(Haapsalu)가 8월의 White Lady Festival에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8월 말 세투 왕국의날(the Day of the Setu Kingdom)에는 전통적인 세투왕국의 새 왕을 임명한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와 죽음, 배회하는 영혼을 기리는 11월의 만성절(Time of Spirits)동안은 나라전체가 조용해진다.

언론

주요 일간지로는 Eesti Paevaleht, SL Ohtuleht 주요 주간지로는 Eesti Ekspress, Maaleht등이 있다. 방송은 ETV, Kanal 2, TV 3이 있다.

관광명소

1) 히이우마아
히이우마아

[히이우마아]

본토에서 서쪽으로 22km지점에 위치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곳으로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구 소련 시절에는 관광객의 접근이 제한되었으나 지금은 관광수입을 위해 개방된 상태다. 북동쪽 해안의 중심지인 캐르들라는 정원과 나무로 가득한 한적한 마을이며 이곳은 마을 북서쪽으로 몇 km떨어진 타흐쿠나반도로 가는 시발점이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중요한 곳이다. 반도의 남쪽기슭 리스티매키에는 1781년 추방되기 직전 마지막 남은 1200명의 스웨덴인들이 최후의 예배를 올린 장소를 표시하는 손으로 만든 십자가가 모래언덕을 덮은 '십자가의 언덕' 이 있다.
2) 사아레마아
사아레마아

[사아레마아]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인 이 섬의 중심도시는 쿠레사아레 (Kuressaare) 이다. 사아레마아라는 이름은 에스토니아 말로 큰 섬이란 뜻 이다. 사아레마아 섬 옆에는 무후(Muhu)섬이 있으며 두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은 약 5000년 전부터 이다. 고대 에스토니아 시절, 이 지 역은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이곳에는 악명 높은 해적의 본거지였다. 그래서 때로는 사아레마 섬이 ''동쪽의 바이킹'' 이라고 불렸다. 1227년 독일이 이 섬을 차지했었으며 16세기에는 덴마크가 섬을 정복 하였다. 그리고 1645년 이 섬은 다시 스웨덴의 차지가 되었다. 이 당시는 스웨덴이 에스토니아 영토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있었다. 소련연방시절에는 이 섬 전체가 군사 시설이어서 에스토니아인도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오늘날 사아레마 섬은 풍차와 중세 성당, 석회암 절벽 그리고 희귀 야생동물 서식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3) 라헤마아 국립공원
라헤마아 국립공원

[라헤마아 국립공원]

구 소연방에서는 최초로 1971년 지정된 국립 공원으로 위치는 탈린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최대의 국립공원으로 해변의 절벽, 우거진 산림, 18세기 영주의 저택, 수많은 호수, 강, 폭포 등이 잘 어우러졌으며 에스 토니아 북부에(지우기) 지역의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 되었다. 곰과 시라소니 등이 많이 서식하며 공원을 동서로 클린트 라고 알려진 북부 에스토니아의 석회 암 평원의 북쪽 끝 절벽을 따라 폭포가 약56km가량 떨어진다. 공원 동쪽 끝 부근에 있는 팜세의 복원한 영주의 저택은 라헤마아의 자랑거리다. 대중에게 개방된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이 저택은 그 시대의 가구로 가득 차 있고, 잘 조경된 정원을 산책할 수도 있다.
4) 수우마아 국립공원
수우마아 국립공원

[수우마아 국립공원]

마녀들이 수 세기동안 습지에서 고립된 생활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이 공원을 탐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카누나 하 아피야로 불리는 사시나무를 깎아 내어 만든 핀란드 전통 배를 타는 것이다. 고원에서 낚시나 캠핑을 할 수도 있고, 습지에 있는 통나무로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볼수 있는 하아 피야 만들기 코스도 있다. 공원은 에스토니아 남서부 구석에 있으며 중심부인 빌리얀티는 탈린에서 버스나 기차로 갈 수 있다.
5) 퓌흐티차 수도원

19세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고대의 이교도 숭배지에 자리잡고 있다. 수 천명의 순도자 들이 해마다 에스토니아 북도족에 있는 쿠레매에의 마을에 있는 러시아정교 수도원에 참배를 하러 온다. 쿠레매에와 탈린사이에 한 편의 버스가 매일 운행한다.

6) 아프루카

이 작은 섬은 자연주의자들의 메카로서 아름답고 울퉁불퉁한 지형에 소수의 강인한 사람들과 그 수만큼의 사슴들이 살고 있다. 가장 볼만한 곳은 여름에 개방하여 강의, 승마, 식사, 시골 풍의 숙박 시설 등이 제공되는 동식물 보호구역이다.

7) 팔디스키 파크리 절벽
팔디스키 파크리 절벽

[팔디스키 파크리 절벽]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벽이 있는 곳이다.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파크리 절벽은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팔디스키는 소련지배 당시 핵 잠수함 훈련기지가 있는 거대한 군사 도시로 더 알려졌다. 에스토니아가 독립되면서 팔디스키 내의 모든 군사시설은 폐쇄되었고 지금은 과거 구 소련 시절 군사기지로서의 모습에서 벗어나 경치가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파크리(Pakri) 절벽은 팔디스키 (Paldiski)의 파크리 반도에 있으며 약 5억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암석은 이 지방에서 보기 힘든 동물화석이 발견되며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경은 매우 훌륭하다. 파크리 절벽의 높이는 25미터로 맨 위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의(Ordovician) 석회암층으로 되어있고 아래에는 캄브리아기 사암으로 되어 있다. 2004년 말 풍력발전기지가 이 곳에 건설되었다.
8) 합살루 - 노르만의 베니스
합살루

[합살루]

면적은 작지만 수도 탈린에서 100km 떨어져 있으며 여름 휴가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도시의 형태는 해변을 따라 한 쪽이 긴 직사각형으로 긴 쪽의 길이가 25Km 이며 이중 해변의 길이가 14km이다. 스파 리조트로 유명한 합살루는 따뜻한 바다와 치료 효과가 있는 진흙 그리고 맑은 공기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다. 이와 함께 합 살루는 700년이 넘는 고도로서 도시 곳곳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골목길에 있는 나무로 된 집들은 건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으며 특히 합살루는 물이 많아서 노르만의 베니스라고 불린다.
9) 파르누
파르누

[파르누]

파르누는 발트 해안 중에서 가장 개발이 잘 된 관광지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머드 테라피와 스파테라피 리조트로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시로 치료 목적의 헬스 리조트가 일찍이 1838년에 개발되었다. 이는 파르누 앞 바닷물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 되면서부터 이다. 최적의 풍토와 최고 품질의 천연 자원을 이용한 파르누 리조트는 매년 전세계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연간 40,000명 이상이 치료를 받으러 찾아 올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장기 치료를 위해서는 1년 전에 예약이 필요할 정도이다. 2,000년 유럽스파연합(ESA)에 가입해 그 효능도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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