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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enia

역사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이후의 역사는 많은 외국세력의 지배와 이에 대항한 독립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문화의 기초는 우라르투가 멸망한 BC 6세기에 성립되기 시작했다. 우라르투는 강력한 동맹국이던 아시리아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에 정복되자 그 여파로 스키타이인과 킴메리인에게 정복되었던 고대왕국이다. 스스로를 하이크인이라 부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주해왔을 때 우라르투의 발달된 농업기술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이주해온 아르메니아인들은 곧 메디아 제국에 흡수되었고 메디아가 BC 550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이 지역의 통치는 페르시아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각 마을 관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르메니아를 정복한 후 BC 301년 셀레우코스 제국에 편입되었다.

로마가 BC 190∼189년 셀레우코스 왕조를 정복한 후에는 대(大)아르메니아와 소페네 두 지역으로 분할되었다가 아르메니아의 대왕 티그라네스 2세(BC 95∼55 재위)에 의해 통일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가 다스리는 동안 최고로 번성하여 인접 지역인 이베리아, 알바니아, 아트로파테네, 시리아, 파르티아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로마 제국 동쪽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급속히 부상했으나 BC 66년 강제로 영토를 할양하고 로마와 동맹을 맺은 후로는 AD 3세기까지 로마와 페르시아 파르티아 왕조의 각축 지역이 되었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아르사크 왕조의 티리다테스 3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킴에 따라 페르시아 및 동양 세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었으며, 300년에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390년 비잔틴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아르메니아로 분할되어 전자는 곧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후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페르시아의 세력이 쇠퇴하자 비잔틴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653년 아랍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11세기 잠시 부흥했던 비잔틴 제국에 병합되었지만 곧 셀주크인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대부분이 셀주크 투르크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영토의 대부분이 그루지야에 편입되어 있었던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셀주크에 점령된 후 실리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소(小)아르메니아를 세워 십자군 전쟁기에 유럽과 굳게 동맹을 맺고 유럽 문화를 많이 수용했다. 13세기 시리아를 통한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몽골 군대를 고용하기도 했으나 1375년 수도가 함락되면서 독립을 상실했다. 16세기 초반 다시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짧은 독립기간(1722∼30)을 제외하고는 18세기까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역로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말기 (1915년 - 1923년)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었다(터키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람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소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면서 아예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1916년 러시아에 정복당한 후에는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동맹을 형성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었다.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던 것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격동 끝에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으로 재통합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에 따라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주민 대부분이 아르메니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의 관할권에 속해 있던 이웃 산악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정치적 지위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1988년부터 수년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분쟁으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이 사망했다. 1988년 12월 7일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 레니나칸과 스피타크 시가 파괴되고 2만 5,000여 명이 죽었다. 1989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공급되던 전력이 끊겨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가동을 못하는 등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가 매우 어려워졌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아르메니아는 그 후 1990년 8월 23일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1992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자치를 주장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승인을 아르메니아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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