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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enia

정치

1995년 7월 5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채택되고 2005년 수정된 헌법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제 공화국이다. 대통령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5년(연임 가능)이다. 2003년 3월 국민의 직선에 의하여 로베르트 코차리안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대통령은 다수당 출신 중에서 총리를 임명한다. 최고 행정기관은 각료회의이며, 총리·부총리를 포함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27명의 각료로 구성된다. 최고 입법기구는 임기 5년의 의원131명으로 구성되는 최고회의(Azgayin Zhoghov)이다. 의원 정수 중에서 90명은 정당 리스트에 의하여, 41명은 직접 선출된다. 2007년 5월 12일 총선에서 정당 별 의석 분포를 보면 아르메니아공화당(HHK) 69석, 번영아르메니아 24석, 아르메니아혁명연합(ARF,Dashnak) 16석, 법의 통치당 9석, 유산당(Heritage Party) 7석, Dashink 1석, 독립당 5석 등이다. 아르메니아공화당의 코차리안 대통령의 총선 승리로 국정 운영 기반이 강화되었다. 2008년 2월19일 실시된 대선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의 후계자로 나선 세르즈 사르키샨 총리가 52%를 득표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권 후보로 나서 21%의 지지를 얻은 레본 테르-페트로샨 전 대통령은 매표와 이중투표 등의 선거 부정으로 패배했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돼 3월1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또 이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3월 20일 비상사태는 해제되었지만 야권에선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아직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2008대선 득표율

데이터 테이블
Candidates
by alphabetical order
Votes %
Artur Baghdasarian 272,427 17.7%
Artashes Geghamian 7,524 0.46%
Tigran Karapetian 9,792 0.6%
Aram Harutiunian 2,892 0.17%
Vahan Hovhannisian 100,966 6.2%
Vazgen Manukian 21,075 1.3%
Arman Melikian 4,399 0.27%
Serzh Sarkisian 862,369 CEC: 52.8%
Levon Ter-Petrosian 351,222 21.5%

경제

독립 이후 처음에는 자본주의화에 필요한 정부지침의 부재, 자산평가 방법의 미비, 민영화 진행에 대한 관심 분산, 관련 정부기관 내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민영화 추진이 지연되었다. 특히 1988년 12월 7일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구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1988년부터 수년 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전쟁으로 1991∼1994년의 경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된 민영화 추진과 개혁, 그리고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합의 후 정황이 안정되면서 1994년 이후 2000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고, 2006년에는 경제성장률이 13.4%에 이르렀다.

2006년에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2.9% 로 낮아졌다. 실업률 7.4%, 절대빈곤층 34.6% 등이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이다. 구 소련연방에 속한 국가들 중에서 민영화가 가장 잘 진행된 국가로 평가된다.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 해소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관건이다.

[아르메니아 인플레이션 추이]

데이터 테이블
연도 2004 2005 2006 2007 2008
인플레이션% 7.0 0.6 2.9 4.3 6.3

06년 말 기준 총 외채는 약 14억 4,800만 달러이며 총 외채/GDP 비율은 23%, 이 중 공공부채가 83.2%, 민간외채가 16.7%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부채는 다자간기구 채무로서 기관별 채무 액 비율은 IDA 58.2%, IMF 11.4%, IFAD, EBRD, IBRD 7.9% 등이며 민간외채의 대부분은 중장기성 외채이다. 외환보유고는 FDI유입 및 해외송금 증가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외채 및 외환 보유고 현황]

데이터 테이블
구분 2005 2006 2007 2008
총 외채 1.861 1.970 2.098 2.244
총 외채/GDP 33.47 30.9 25.5 24.6
D.S.R 7.9 6.2 4.7 4.0
외환보유고 669 1.072 1.330 1.610
수입 개월 수 3.3 4.1 4.5 4.6

산업별 구성 비율은 농업 18.2%, 광공업 38.6%, 서비스업 43.2%(2006년 추산) 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광·공업 부문이 국가경제를 주도한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과 경공업 위주였으나, 2006년 화학, 비철금속, 기계장비류, 정밀기계, 섬유, 의류, 양조, 통조림 제조 등에 주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독립 후에는 국가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1991년 전체 농토의 80%에 대하여 농가당 0.5㏊를 배분하는 농지개혁법, 기업활동법, 법인세법 및 국영기업 사유화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였다.

[부문별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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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8%성장 알코올음료, 제과, 통조림, 부문  
야금업 알루미늄, 페로몰리브덴 성장 구리 축소  
건설업: 19.2%성장 지속적 성장 건축자재 생산증가에 기인함
에너지 천연가스 공급 지속적 증가 가스 인프라의 확장에 기인
서비스 13%성장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기인

대외무역을 보면 수출 10.2 억 달러, 수입 19.2 억 달러(2006년)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다이아몬드, 광물, 식료품, 에너지 등이며, 수출대상국은 독일 17.4%, 네덜란드 12.9%, 벨기에 12.8%, 러시아 12.6%, 이스라엘6.8%, 미국 5.8%, 스위스 5.3%, 그루지야 4.9%, 이란 4.7% 등이다. 수입대상국은 러시아 20.1%, 우크라이나 7.2%, 벨기에 7%, 투르크메니스탄, 이탈리아 5.6%, 독일 5.3%, 이란 5.2%, 이스라엘l지우기 4.4%, 루마니아 4.3%, 미국 4.1% (200? 년) 등이다.

농축산업

아르메니아의 GDP 구성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이지만 전체 노동력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45%이다. 이는 지형과 기후상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 지속적인 농지개발과 관개사업으로 농업이 진흥되었기 때문이다. 경작지는 국토의 17%, 목장·목초지 및 건초지가 39%를 차지한다. 산악지역의 농지는 옥수수 밭·과수원·포도밭·목초지 등이 혼재되어 있다. 사유 경작지는 1991년에 전체 경작지의 1/3에 불과하였으나 1992년에는 90%로 증가하여 자본주의의 토대가 이루어졌다.

최대경작지는 아라라트 평원,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이며, 저수지·양수·관개용수로의 설치로 경작지의 절반 이상이 관개된다. 아라크스강 유역의 관개지에서 밀, 보리, 올리브, 무화과, 석류, 목화, 포도 등이 재배되며, 예레반 주변 지역에서 집약적인 원예농업과 양잠이 성하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지역에서는 곡물, 사탕무, 감자 등의 재배가 양 사육과 결합되어 행하여지며, 산록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라이보리(호밀) 등의 곡류, 산악지대의 남사면 저지에서 잎담배와 감자가 재배된다. 아라라트 평원에서는 과거에 주로 목화와 사탕무가 재배되었으나 최근에는 포도와 같은 환금용 작물을 재배한다. 로리, 시라크 고원, 세반분지 등에서는 대규모 목축이 성하고, 서남부의 산간지방에서는 동계방목을 행하며, 광대한 고산목초지에서는 소·양·염소 등이 사육되고, 세반호에서는 송어 어업이 행해진다.

[종류별 농업 생산량]

(1000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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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2003 2004 2005 2006
Grains 191.9 200.8 206.8 209.6 182.4
Potatoes 30.5 32.3 35.7 34.4 33.0
Vegetables 20.1 23.2 22.2 22.5 24.4
Water-melons 3.9 4.1 4.0 3.9 4.0
Forage crops 57.8 53.0 55.3 60.9 65.6
Industrial crops 1.4 1.3 1.2 0.5 0.8
Total 305.7 314.6 325.2 331.8 310.2

광공업

아르메니아는 구리, 몰리브덴, 납, 아연, 철광석, 망간, 금, 크롬, 수은광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지만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연계가 단절되어 산업화되지 못한 채 많은 광산이 폐쇄되었다. 건축재로 사용되는 응회석, 경석, 현무암, 대리석등이 아직도 많이 채굴된다. 라즈단강·소라켄강·테메트강에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국내의 비철금속자원과 수력 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파이프라인으로 수송되는 석유 및 천연가스와 더불어 기계, 화학, 야금, 섬유, 양조, 피혁공업 등을 발달시켰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동·아연광 등의 제련, 시멘트 산업이 발달하였다. 에너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영향으로 인하여 석유·가스가 부족해지자 1995년 6월에 안전성 문제로 정지하였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재개하였다. 수도 예레반은 최대 공업도시로 전국 공업생산의 3/5을 차지하며, 전기기계·금속·인조섬유·식품·비료·양조·화학·양모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에치미아진에 기계 및 식품공업, 아보비안에 기계공업, 라즈단·오크템베랸 및 케네케르에 알루미늄공업, 알라베르디에 화학공업, 구가르크·잔게주 및 카판 등지에 구리 및 몰리브덴 정련업이 발달하였다. 북동부의 프리제베드 지방에는 화학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조 보석 및 기계공업이 발달한 키로바칸 공업지대, 식품 및 전기기계공업이 발달한 스테파나 반공업지대 등이 있다. 북서부의 시라크스크 지방에는 기계공업 중심의 중공업이 발달한 귐리 공업지대가 있으나 1988년 12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및 터키와의 정치적 안정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동안의 경험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이 기대된다.

에너지

아르메니아는 카스피해와 흑해를 동서로 잇는 일종의 랜드 브릿지(land bridge) 역할을 해주는 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은 물론 부존 자원조차 없는 자원빈국이다. 또한 석유자원의 통과 루트에서도 그루지야와 달리 벗어나 있어,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의 분쟁 이후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방면의 국경이 봉쇄된 관계로 에너지 도입선을 남부의 이란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이란과의 연계 망 구축 노력을 할 정도로 내륙국으로서의 애로를 겪고 있다.

1) 석유

확인된 매장량이 없고 정유시설도 없어 석유정제 제품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인접국 그루지야와 달리 카스피해산 석유의 대 유럽 수출용 파이프라인도 통과하고 있지 않아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체 수요 석유관련 제품도 철도나 트럭 수송망을 이용해 수입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석유 공급이 끊기자 아르메니아의 석유 소비는 1992년의 1일 48,400배럴 수준에서, 2000년에는 1일 5,000배럴 수준으로 급감 되었으며 대부분이 조지아의 바투미에서 들여오고 있다.

카스피해산 석유의 주요 수송로가 될 'MEP(Main Export Pipeline)'건설 프로젝트도 아르메니아를 경유하지 않고 있는데, 아르메니아는 이 파이프라인이 북부아르메니아를 경유할 경우 수송거리 단축으로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마저도 아제르바이잔과의 나고르노-카라바흐지역 분쟁이 미해결된 상황에서 볼 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기존의 조지아 루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2) 천연가스

확인된 가스 매장량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소비 가스를 전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99년 기준 456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소비하고 있다. 지역분쟁 발발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시절에 구축된 가스 수송망을 봉쇄했으며, 이로써 모든 가스 수입을 조지아를 경유하는 러시아산으로 대체했다. 민간 가스업체인 이테라(Itera)사가 '96년이래 주 공급업체로 부상했다. 이란-아르메니아간의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어 도입선의 다변화가 가능해졌다. 천연가스 배급은 Armosgazprom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아르메니아 정부 45%, 러시아의 가즈프롬 45%, 민간기업 Itera 10% 지분 보유). 2001년에 설비 개선에 6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1년 2월 아르메니아와 러시아는 '99년에 체불된 700만 달러의 채무 액 처리에 합의했다.

한국 석유수출공사 2007.03

이란과 아르메니아가 3.19일 160㎞ 길이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공식 개통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최초의 대체공급원을 가지게 되었다. 파이프라인 개통식에는 양국의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란은 가동 초기에는 연간 4억 입방, 미터(141억 입방피트), 2008년까지는 연간 25억 입방, 미터(882억 입방피트)의 가스를 아르메니아에 공급할 예정이다. 향후 20년간 총 공급규모는 360억 입방 미터(1.3조 입방피트)이다.
파이프라인은 이란 Tabriz에서 시작하여 아르메니아 Kadzharan까지 이어지며 약 3년의 공사기간과 2억불의 투자비가 소요되었다. 파이프라인에는 이란 남부의 Assalouyeh, Bid Boland, Kangan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가 공급된다.

3) 석탄

생산도 없고 확인된 매장량도 없음. 가정 연료로 사용되는 석탄은 공급부족 상태이다.

외교

Genocide

아르메니아 민족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주위의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개종을 거부해 근방에는 아르메니아 민족만이 기독교 민족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기회만 생기면 아르메니아를 이슬람 국가로 개종하기 위한 이슬람 제국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15세기부터 오토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아르메니아도 오토만 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오토만 제국에는 약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살고 있었다.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 인들은 오토만 터키 통치자들의 압제에 반발, 봉기했으며, 러시아가 터키를 침공하자 러시아군 편에 서게 된다.

이는 곧 엄청난 비극을 불렀다. 격분한 오토만 제국은 1915년 4월부터 자국 내의 아르메니아 인들을 조직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학살하기 위해 18세 이상 50세 이하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모두 군대로 소집했다. 강제 징집된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터키군에서 얼마간 훈련을 받다 나중에는 모두 무장해제된 뒤 50명에서 100명 단위의 그룹으로 나뉘어 다리 건설과 도로공사 현장에 동원됐다. 얼마 뒤 이들은 모두 집단적으로 공사장에서 터키군에게 학살됐거나, 굶주림과 극심한 노동으로 죽어갔다. 이런 식으로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터키군에게 끌려가서 죽임을 당했다.

남아 있던 어린이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은 모두 사막으로 강제 추방돼 처참하게 굶어 죽어갔다. 한 예로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시리아의 사막으로 추방했는데 시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단지 3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때의 대학살로 150만~2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3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중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가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의 대학살로 인해 아르메니아 민족들은 고대 시대부터 살아온 땅과 가족과 재산을 잃고 전세계로 흩어지게 됐다. 현재 러시아에 200만 명, 미국에 100만 명을 비롯해 107개국에 모두 9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나치가 2차 대전 중 치밀한 계획하에 유대민족 말살을 시도했을 때,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 “지금 누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기억하는가?”라는 주장을 펴면서 유대인 학살을 적극 옹호 했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터키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이나 사과를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터키 정부는 단 한번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도리어 대 학살 건을 제기하는 아르메니아에 대해 국교 단절과 국경 봉쇄, 금수 조치를 통해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외교적 보복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는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엄청난 곤란을 당하고 있다.

그 동안 터키 정부는 3천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면서 주로 미국 대학의 역사학자들을 매수해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여왔다. 터키 정부는 일관되게 오토만 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내전으로 3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과 수 천명의 터키 인들이 죽었다고 오랫동안 주장하고 있다.

학살 현장 사진 학살 현장 사진

[학살 현장 사진]

최근 터키의 유럽연합가입에 대하여 연합 측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선결요건 중 하나로 지정했으나 학살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언론인이 피살되는 등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1) 배경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소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 급경사의 계곡, 숲, 농장과 목초지가 많은 지역으로 아르메니아 계 주민이 다수이다.

1920년 카프카즈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아르메니아 공화국 영토로 귀속될 예정이었으나 「스탈린」에 의해 1923년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확정되면서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계임을 감안, 자치공화국 지위를 부여 받았다.

2) 분쟁과정

3만 명의 일반인이 사망하였고, 난민이 된 5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 계 주민들이 아직도 귀환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폐허뿐 아니라 지뢰 문제도 심각하다. 당사국들의 강경한 입장과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07년 7월 대선에서 85%를 얻은 카라바흐 공화국 전(前) 보안 책임자인 바코 사키안(47)은 지난 7일 공화국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로버트 코차리안 대통령 등 아르메니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거행했다.

최근 양국 정부군간의 교전 발생으로 3명이 사망하는 등 긴장감 다시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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